본문 바로가기

Current Affairs, Issues/Issues

응8 작가진이 공개한 택이 덕선 미공개 결혼스토리

덕선이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그것은 곧 그들이 말하지 못한 비밀을 털어놔야 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자의 뚜껑만 지그시 바라보던 덕선의 손을 잡아끌어 그러쥐는 것은 택의 손이었다. 덕선이가 택을 돌아봤을 때, 여느때처럼 아무말 없이 옅은 미소를 띄고있는 택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덕선아. 덕선아, 괜찮아.’

덕선은 그런 택의 눈에 따라 엷게 웃으며 택과 잡은 손을 더 꽉 힘주어 잡았다.

덕선과 택이 먼저 향한 곳은 덕선이네였다. 대문안에서 ‘통통통통’ 파 써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지만 덕선은 늘 그렇듯이 ‘예쁜 딸 왔어!’ 하며 대문을 열지 못했다. 굳은 표정으로 심호흡을 한 덕선이 마침내 택이와 잡은 손을 떼고 대문은 열었다.

“둘째 딸왔어!”

“왔나! 어이구, 우리딸. 얼른 손 씻구 밥 무으라.”

일화의 목소리가 들리고 덕선의 뒤로 따라들어온 택이 눈 앞에 나타난 일화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야, 택이도 왔나! 밥 안 무읐제?”

“아이구, 우리 최택사범님 오셨는가?”

방 안에서 반기는 동일의 소리에 택은 고개를 돌려 동일에게도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밥을 차리려는 일화의 등 뒤로 덕선이 말했다.

“엄마, 아빠. 나 할말 있어.”

미처 다 채워지지도 않은 밥상이 치워지고, 안방에는 일화와 동일이 앉았고, 그 앞에 덕선과 택이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화와 동일은 어리둥절하며 둘째딸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간 뜸을 들이던 덕선의 입이 열리고, 덕선의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 아빠….. 나 사실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요공치는 덕선의 목소리에 입술을 깨문 택이 선수를 쳤다.

“저희 결혼하고 싶습니다.”

일화와 동일은 물론이거니와 덕선도 놀라 택을 봤다. 택은 이어말했다.

“허락해주세요.”

“태…택아.”

일화의 떨리는 목소리가 택을 한번 스치가다 덕선을 형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이었다.

“아이지? 덕선아. 엄마가, 엄마가 잘못 들은기지?”

동일은 표정을 굳히며 아무 말 없이 덕선을 보고있었고, 일화는 덕선의 손을 끌어잡았다. 일화의 두 눈이 도리질을 치고있었다. 아니라고 할하라고, 일화의 두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덕선은 고개를 숙이며,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 이기, 이기 미칬나? 너네 무슨 사인줄 아니? 사돈간이다, 사돈! 덕선이 너네 형부가, 택이 형이라고! 겹사돈이 말이되나! 니 엄마 죽고싶은 꼴 보고싶어서 이라나!”

“엄마…”

어느새 덕선의 두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동일은 아무 말없이 바닥만 보며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불똥은 택이에게로 튀었다.

“택이 니도 이람 안되는기다. 나는 덕선이 야는 안 믿어도, 택이 니는 믿었다. 택이 니가 말렸어야 하는거 아이가? 니는 지금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택의 눈가에도 어느새 벌겋게 눈물기가 올라왔다. 그럼에도 여타의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이 꾹 다물어진 덕선과 택을 보고 일화의 마음에 큰 돌덩어리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 이 아니들의 마음은 진심이구나. 그저 봄날의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마음이 아니구나. 일화의 입이 굳게 닫혔다.

“안된다. 내는 분명히 말했다. 절대로 안된다.”

“택아.”

여태껏 아무 말 없던 동일이 택의 이름을 불렀고, 택이 고개를 들어 동일을 봤다.

“너네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

“아뇨, 모르고 계십니다.”

“…..그럼 일단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와라. 이건 우리만 들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일단 너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그리고 말하자.”

말을 끝마친 동일은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아예 등을 돌려앉은 일화의 등을, 덕선은 눈물 섞인 눈으로 슬프게 바라봤다.

전화기를 든 일화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어느새 일화의 이마에는 하얀 띠가 묶여있었으며, 수화기 너머로는 보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일화가 보라에게 덕선을 말려달라는 전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응, 우리는 알고있었어. 엄마.”

“니가 어떻게 이럴수 있나? 엄마한테는 말했어야지, 아니, 말하기 전에 니가 덕선이 마음 잡아놨어야지.”

“우리가 어떻게 그래.”

한박자 띠며 다시 들려오는 보라의 목소리가 일화의 귀에 울렸다. 그때 찬 기운와 함께 다시 들어오려던 동일의 귀에 약하게 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선이 아니였음 우리 결혼 못했어. 덕선이네 사귄지 이년 넘었어, 엄마. 만약 덕선이가 마음 먹고 먼저 사귀고 있다고, 결혼하겠다고 말했으면 우리… 동성동본에다가 겹사돈이야. 우리 결혼 못했어.”

“보라야, 그래도….”

“덕선이가 또 양보해준거야.”

찬바람이 들어오려는 문을 닫으려는 동일의 손이 멈췄다.

“덕선이가 또 우리에게 양보해준거야, 엄마. 그래서 엄마, 우리는 덕선이 결혼 반대 못해.”

단호한 말투에 일화가 한숨을 쉬며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다른 손으로 닦았다. 일화의 두 눈이 갈곳을 잡지못하고 허공에 먼지만을 응시하다 잠겼다.

택의 말이 끝나고, 선영은 무성의 눈치만을 살폈고, 무성은 굳은 얼굴로 낮은 의자의 팔을 붙잡았다. 꿇어앉은 택이 만저 입을 뗐다. 택의 두 눈이 무성의 눈을 붙잡았다.

“10년을 덕선이를 좋아해왔고, 6년을 제 감정을 속여왔고, 2년동안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제… 저, 덕선이에 대한 마음을 더이상 제 자신에게도, 아빠에게도, 세상에도 숨기고 싶지 않아요. 아빠, 저 덕선이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무성은 아무 말도 없었다. 무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향했다. 쓰러질 것만 같은 무성의 걸음걸이에 선영은 안절부절 못하며 뒤따랐다. 택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 뺨을 흘렀다. 택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은 그 자세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택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것같은 덕선이 택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택의 두 손은 굳은 듯이 택의 무릎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안방에 앉은 무성을 선영이 불안하게 바라봤다. 무성은 두 눈을 꾹 감고 턱을 부르르 떨었다. 선영이 조심스레 무성을 불렀다.

“오빠….”

무성이 선영의 부름에 천천히 눈을 떴다. 두 눈에 시뻘겋게 충혈되어있었다. 무성은 참고있었다. 속에서 와르르 돌들이 무너져 눈물을 차올리는 것을, 무성은 어금니를 깨물며 참고있었다.

“내가…. 내가 택이 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노? 우리 결혼하자고, 내가 니랑 함께 하고 싶어서… 택이 쟈한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줬는데, 내가…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무슨 아빠라고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노, 나는 몬한다. 나는….. 택이한테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때, 안방 문 앞에서 쿵 소리가 들려왔다. 선영이 황급히 문을 열자 선영과 무성의 눈에 안방 문 앞에 무릎꿇은 택이와 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덕선의 모습이 들려왔다.

“저, 아빠가 저한테 미안한 감정 가지시는 거 싫어요. 미안한 감정에 억지로 결혼 허락하시는 것도 싫어요. 아빠 재혼하시는거 동의했으니까, 제 결혼도 허락하시라고 하는 거 이니에요. 저는 그냥, 아빠 아들로서 허락받고 싶은거에요. 아들이, 아빠에게 결혼을 허락받고 싶은거에요. 그러니까 미안한 감정가지시지 마요. 저 아빠가 그런 감정 안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비오듯이 흐르고 있었다. 덕선도, 선영도, 무성도 처음이었다. 돌부처 택이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무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 한방울을 흘려보냈다. 무성의 거친 빰 위로 눈물길 하나가 길을 내며 떨어져 내려갔다.

아침해가 밝았다. 밤새 잠을 못자던 무성은 무언가 결심한듯 방문을 열었다. 아직도 택은 어젯밤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무성은 엄하게 말했다.

“네 뜻 잘 알았다. 나는 반대야.”

“아빠…”

택이 고개를 올려 무성을 봤다. 밤새 눈도 제대로 깜빡이지 못했는지, 택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있었다. 무성은 겨우 그 표정을 외면하다가, 다시 택을 내려보았다.

“네가 정말 이 아빠에게 정식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당장 네방에 돌아가서 잠부터 자. 이렇게 잠도 안자도 네 몸 괴롭히는거, 아빠에겐 네가 네 몸 볼모로 우리에게 협박하는 거로 밖에 안느껴져.”

그 말에 잠시 고개를 떨군 택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새 꿇어앉은 탓에 방으로 행하는 택의 발걸음이 여러번 위태로웠지만 무성은 도와주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발이 나가려는 것을 무성은 참고 또 참았다.

빈속의 무성은 덕선이네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성과 마찬가지로 밤을 샌 동일이 일어나 무성을 맞았다. 몸져누어있던 일화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무성은 짧게 목례하고 덕선이네 방문을 열었다. 덕선도 택이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덕선이 너도 이러는 거 아니다. 네 몸 빌미로 부모님께 협박하는 거 아니야. 부모님 설득시키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

말을 끝낸 무성을 몸을 돌려 동일의 앞으로 향했다.

동일과 일화가 나란히 앉았고, 그 앞에 무성이 앉았다. 그 중 멀쩡해보이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무성이 먼저 입을 뗐다.

“저는 택이에게 반대하고 했습니다. 두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야할것 같아서, 이렇게 아침부터 실례했습니다.”

“당연히 반대지요, 겹사돈이 말이 됩니까? 내도 절대로 안됩니다.”

“나는 허락했네.”

의외의 말에 무성과 일화가 깜짝 놀라 동일을 바라봤다. 그와 달리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은 동일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나는 반대 못하네. 우리 둘째 딸, 덕선이…. 25년을 즈그 언니, 동생에게 양보하고 살았네. 후라이 하나 먹고싶은거, 다 즈그 언니, 동생한테 양보하고 살았고, 엄마 아빠한테 서운한 것도 다 웃으면서도 속으로 썩히면서 괜찮다, 괜찮아. 말도 못하고 살았어. 그런데 봉황당, 이번에도 그랬다 안하는가? 지가 결혼하고 싶은데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짝짓고 새끼들 낳아감시롱 오순도순 살고 싶어도, 이번에도, 이번에도 또, 다른 것도 아니고 결혼도, 양보했다지 안하는가? 동성동본에 겹사돈이라 그라문 즈그 부모 쓰러질까봐 충격받을 까봐 말도 못하고 여태껏 그랬다지 안하는가? 나는…. 나는 그런 착한 우리 둘째 딸 덕선이에게, 또다시 미안허다. 이 아부지가 미안허다. 그래도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니가 양보해 줄 순 없느냐, 이리는 못 말하네. 미안하네 봉황당.”

동일의 눈이 일화에게로 행했고, 동일의 손이 일화의 손을 꼭 잡았다.

“임자 마음도 아네. 그래서 임자한테 허락하라고도 못말하네. 그래도 나는 못하네. 나는 덕선이한테 반대 못하네 임자. 미안하네.”

이틀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부모가 걱정된 보라부부가 각자 집에 들어간 것도 아침의 일이었다. 며칠째 드러누운 일화 대신에 보라가 대신 아침을 차리려했지만 사건의 전말을 들은 미란이 먼저 덕선과 일화를 제외한 모두를 데려가 아침상을 차렸다. 그러나 덕선이 집에 남아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화는 덕선이네 방문을 열다 옆으로 누어있는 덕선을 발견하고 말았다. 며칠째 대화가 없던 딸이었다. 일화는 문을 다시 닫을까 하다가 입을 열었다.

“밥먹으러 안갔나?”

“아… 응, 밥 맛이 없어서….”

오랜만에 만난 딸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져있었다. 그렇게나 밝은 얼굴이었는데. 아, 아니구나. 덕선이는 슬퍼도 억지로 웃는 아이얐는데. 부모 속 안썩이려고 감정도 누르던 아이였는데. 이제야 덕선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구나. 일화는 다시금 밀려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억누르며 말했다.

“….밥 묵자, 덕선아.”

초라하게 차린 반찬 사이에 계란 후라이 하나가 놓여졌다. 덕선이 먹는 밥 위로 후라이를 놓은 일화가 가만히 덕선을 바라봤다. 난 괜찮아. 이전부터 달걀이 두개 남았을 때, 덕선은 늘 그래왔다. 난 괜찮아. 일화는 천천히 입을 뗐다.

“한번만 더……는 안되겠나?”

젓가락질을 하던 덕선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예쁜 우리딸, 한번만 더 엄마한테 양보하면 안되겠나?”

덕선은 고개를 올려 일화를 봤다. 일화는 웃는 듯도, 우는 듯도 한 얼굴이었다. 아니, 모르겠다. 덕선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싫어 엄마.”

일화는 고개를 올려 흐르려는 눈물을 삼켰다.

“나 이제 택이 없으면 못살아. 늘 택이가 옆에 있었어. 엄마랑 아빠랑…. 노을이랑 성보라한테 늘 양보해서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처럼 느꼈을 때, 택이는 늘 옆에 있었어. 늘 택이가 옆에 있었어. 그래서 이제 택이가 없으면 내가 죽을 것같아 엄마. 늘 택이가 옆에 있어줘서, 이제는 택이가 없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

눈물이 뚝뚝 흘러 밥알 사이로 흘러들어갔다. 일화가 덕선의 옆으로 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덕선의 등을 토닥였다. 그랬구나. 우리 택이가 그랬구나.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마음, 우리 택이가 채워줬구나. 우리 택이가 우리가 있어주지 못한 덕선이 곁을 지켜줬구나. 그래… 그런데 우리가 어쩔 수가 있겠니. 우리 딸, 이제는 택이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데 어찌할 수가 있겠니. 그래 덕선이. 이제 네가 원하는 삶을 사렴. 양보도 하지말고, 부모님을 위한 삶을 살지도 말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그래, 그렇게 살렴. 일화가 엷게 웃었다. 그렇게 일화는 눈물을 흘리는 덕선의 옆에서 등을 토닥이며 엷게 웃었다.

“미안하데이.”

“그렇게 결정났으면 어쩔 수 없지요. 내는 괜찮아요, 우리 오빠야가 걱정이지. 응, 알았어요. 들어가시소.”

수화기를 놓은 선영이 안방에서 한숨을 쉬고있는 무성을 보았다. 선영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어찌보면 그들의 재혼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렇기에 선영은 택의 편에 설수도, 무성의 편에 설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선영은 한숨을 쉬며 택의 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둘은 무성의 말 이후로 밥은 먹어가고 있었다.

“택아, 밥 묵….”

택은 방에 없었다. 선영은 다시 안방으로 향했다.

“오빠야, 밥 묵으라.”

“응? 아, 그래….. 선영아 잠깐 나 바람 쫌 쐬고 오께. 먼저 먹고 있어라.”

“응, 그라시소.”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밖을 나가는 것같았다. 그만큼 힘겹고, 괴로우리라. 선영은 나가는 무성의 뒷모습을 고개를 저으며 바라봤다.

골목으로 향하던 무성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무성은 소리를 죽이고 고개를 내밀어 골목을 봤다. 골목에는 택과 덕선이 있었다.

“그래, 결국 두분은 허락하셨구나.”

“응, 그래도 다행이다. 그치?”

“응….”

아직 낯빛이 어두운 택을 덕선은 꼭 껴안았다.

“택아….”

“아빠 불쌍해. 늘 내게 져주셨는데, 또 나한테 져달라고…. 할 수가 없어.”

덕선은 택의 등을 토닥였다. 오늘따라 택의 어께가 더 무거웠다.

“늘 아빠는 날 위해 계셨어. 한번도 본인 인생을 위해 사신적이 없어. 티비소리 제대로 내보신 적이 없어.”

무성은 늘 그렇게 살았다. 항상 택을 위해 살았다. 그럼에도 택은 포기할 수 없었다. 덕선은 엄마를 잃고 혼자만의 세계를 가졌던 택을 세상에 끌고나온 유일한 사람이니까. 택은 덕선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렸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야.”

쿵, 하고 무성의 가슴에 무언가 떨어졌다. 무성은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아들이 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자신때문에. 어릴 적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낸 아들이, 한 분야에서 제일 꼭대기까지 스스로 오른 아들이 오로지 자신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무성은 그것만은 견딜 수 있었다. 무성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부모가 졌다. 부모니까, 부모라서, 부모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성은 택이에게 질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무성은 택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단 하나의 이유인 부모이기때문에.

“결혼해라.”

택과 덕선 앞에 놓인 하나의 산이 와르르 무너졌다. 택은 놀람에 고개를 들어 무성을 바라봤다. 무성은 택의 손을 끌어 잡았다. 무성은 누구보다 흐뭇한 표정으로 택의 손을 끌어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빠…”

택의 눈물이 뜨겁게 흘렀다.

“아빠, 아빠… 미안해요.”

“고맙다 택아.”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빠는 택이에게 고맙다. 그러니 스스로 미안해하지 말고, 스스로를 자책하지도 말렴. 나는 네가 아빠의 아들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우니, 네가 아빠에게 미안해할 것은 하나도 없단다. 무성은 두꺼운 손으로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사랑한다. 아들.”